기침때문에 남편에게 꿀과 생강을 좀 사다 달랬더니,작고 앙증맞은 병에 들어 있는 물엿을 사가지고 왔다.에? 물엿,싶으면서도 바쁜 와중에 마누라 아프다고 쫓아가서 사다 주는게 너무 고마와서,생강차를 한솥 끓여서 물엿을 떠넣고 몇잔을 마셨더니 살 것 같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조청같은 것일 게다.김치할 때 넣는, 비닐봉지에 담아서 시장에서 파는 물엿보다는 색깔이 더 진하고 농도도 진하다.물엿이 든 작은 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떡을 구워서 찍어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에 외갓집에 갔다가 조청만드는 걸 본 적이 있다.커다란 가마솥 안에서 김을 내며 보글보글 끓고 있는 조청,엄마랑 외할머니가 뜨거운 김을 피해가며 긴 국자로 열심히 젓던 것이 생각난다.계속 저어주어야 눋지 않고 타지도 않는다고 그랬던 것 같다.다 만들어진 조청은 처음에 맛보던 것과는 천지차이로,굉장히 진하고 걸죽한 단맛이 가히 환상적이었다.외할머니가 내 주시는 떡에다 찍어 먹거나 찐고구마에다 발라 먹던 조청맛은 잊을 수가 없다.
어린 시절만 해도 군것질거리가 거의 없어서, 단음식이라고해봐야 국자에다 설탕을 녹여서 거기다 소다를 조금 넣고 만들어 먹던 포토(우리 동네에서는 포토라고 했었다) 정도일까.집에서 엄마몰래 해먹다가 번번이 국자를 새카맣게 태워서 눈물이 쏙빠지게 혼이 나고는 했지만,한창 자라는 때라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다,혼날 때 혼나더라도 우선 하고 보자는 호기심이 그만큼 많았던 것 같다.
엄마에게 들키기 전에 얼른 국자를 원래 상태로 해 놓는 것 또한 무지하게 어려운 일이었다.올이 굵어서 놋그릇 닦을 때나 쓰던 쑤세미를 들고 나와서 마구 문지르면 어느 정도는 지워지는데 끝부분의 많이 탄 부분이 꼭 남아서 속을 썩였다.엄마가 얼렁뚱땅 넘어 가주면 모를까,포토를 해먹은 날은 꼭 가스나들이 집에 불내려고 환장했냐며 혼이 나기 일쑤였다.^^*
그 다음으로는 꿀호떡도 빼놓을 수 없는 좋은 간식거리였다.집에서 만드는 호떡은 왜그리 딱딱해지는지 지금까지도 의문이지만,밀가루 반죽을 동그랗게 만들어서 그 안에 설탕을 한숫가락 넣고 달군 후라이팬에 떨어뜨린 다음,바닥이 편편한 밥그릇으로 꾹 누르면 옆구리로 설탕이 삐직하고 나와서 저혼자 달달한 냄새를 풍기며 새카맣게 타들어가던 기억이 새롭다.
식구가 많기도 했지만,엄마는 워낙 손이 커서 한번 호떡을 먹자 싶으면 밀가루 반포대를 그냥 반죽해 버리곤 했었다.커다란 양푼이에 밀가루,물,계란을 한개 넣고 열심히 젓는 건 언제나 나 아니면 동생 명아의 몫이었고,아무리 열심히 저어도 끝까지 남아서 속을 썩이는 밀가루 덩어리들을 노려보며 이래도 안없어지냐고 숟가락으로 양푼이 벽으로 밀고가서 부숴뜨리는 게 일이었다.
작은 손으로 열심히 양푼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다보면 점점 되져서 어느새 숟가락 잡은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 나가고 그러면,엄마가 커다란 덩어리가 된 호떡반죽을 열심히 치대서 완성을 시키고는 했었다.
동생들과 나,엄마는 양푼이에 커다랗게 담긴 반죽을 조금씩 떼서 설탕을 고물로 넣고 동그랗게 만들어 오봉이라고 부르던 스테인레스 쟁반 위에 하나하나 쌓곤 했는데,엄마가 만드는 반죽말고는 형태랑 크기가 다 제각각이어서 누가 만든건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호떡을 만들어서 쌓으려고 커다란 접시를 옆에 갖다 놓기는 해도,만들어지는 족족 바로바로 우리들 입으로 들어가기 바빴다.결국,실컷 먹고도 남은 호떡은 접시에 차곡차곡 쌓아서 몇시간 뛰어 논 다음에 먹으면 그 맛이 또 꿀맛이었다.적당히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서 얄팍해질대로 얄팍해진 호떡은 이미 호떡이 아니고 과자가 되어 버렸지만,집에서 만들어 먹던 그 호떡맛을 못잊어서 나는 어른이 된 후에도 아주 가끔씩 집에서 만들어 보고는 했었다.물론,뭘먹어도 어린 시절 그 맛에는 따라갈 수가 없었지만.
우리 남편이 일본에 유학와서 처음으로 해 본 아르바이트가 바로 호떡 굽기인데,우리가 그 때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했었다.툭하면 놀러가서 도와주는 척하고 한개씩 슬쩍슬쩍 먹었을텐데......아쉽다.일본에서는 꿀호떡 한장에도 200엔이나 한다.일본사람들에게도 인기가 있고,프로들이 만드는 터라 맛도 있다.어휴~침넘어 가네!.갑자기 호떡이 너무너무 먹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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