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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과 약속. 그리고, 바람의 흔적



[잡지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화르르~~딱! 딱! 딱!”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했다. 아버지께서 문학청년이셨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다. 내 유년 시절의 기억에는 앉은뱅이 책상에서 두꺼운 노트를 몇 권씩, 때때로 식사까지 걸러 가며 빼곡하게 글로 채우시던 당신의 모습이 있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알랑들롱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젊은 날의 아버지는, 그렇게도 애가 타게 사랑하시던 글쓰기를 어느 순간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하셨다. 어린 시절 세피아 색 무성영화처럼, 발을 씻고 타박타박 걸어서 집으로 돌아 가다가 자꾸만 흙이 들어 오는 바람에 몇 번이고 되돌아 우물가로 향하던 장면과 맞물려 항상 떠오르는 아버지의 책장과 색 바랜 노트들……내가 다섯 살 쯤 먹었던 그 시절은, 시를 쓰고 수필을 쓰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릴 만큼의 배짱도 오기도 용서되지 않는 시대였다.

어느 날 발작처럼 아버지는 책장의 책과 노트들을 전부 꺼내서 마당에 모아 두고 불을 지피셨다. “화르르~~딱! 딱! 딱! 화르륵~~!” 불똥을 튀기며 책이 타들어가는 모습은 무서웠다. 그렇게 고뇌에 찬 당신 청춘의 1막1장이 황망하게 끝나 버렸다. 그 동안 참고 참았던 집안 식구들로부터의 글쟁이에 대한 구박도 그로부터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생쥐가 치즈를 갉아 먹듯, 미친 듯이 책을 밝히게 된 첫딸에게 국문학과만 들어가면 원하는 대로 책을 사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고, 나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국문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우리 반 학급 문고를 독파하고, 옆 반에 책을 빌리러 다니거나, 커서는 잠도 자지 않고 하루에 두 권 정도를 내리 읽어 대며 집안의 책장을 채워 나가던 책벌레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고 보니 그렇게 읽었던 책이 좌우 당간 읽기는 읽었으나 제목과 내용이 일치가 되지 않는 경우는 부지기수요, 두세번을 읽었음에도 제대로 내용의 맥을 짚어내지도 못하는 경우가 셀 수가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짤막짤막한 수필들은 힘을 들이지 않아도 또록또록 잘도 떠오르곤 한다. 책의 내용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수필을 읽었을 때의 교실 분위기까지도 기억이 나는 것이다.

하얀색 커튼 끝자락이 상쾌한 바람이 불 때 마다 살짝살짝 일렁거리던 커다란 통 유리창의 기억, 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갈색 단발머리 동급생의 기억. 단정하게 턱 아래께까지 잘라서, 약간만 고개를 숙이면 옆 얼굴을 가릴 수 있는 커튼 역할을 하던 단발머리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여고생에게 있어 딱딱한 고전과 소 논문 사이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경수필은 그만큼 매력적이고 로맨틱 할 수 있다. 어디선가 불어 오는 바람내음에도 상념에 젖을 수 있는 여자 아이의 잠재 의식 속에 뿌리를 내린 기억인 모양이다.

지난 날의 가난은 잊지 않는 것이 좋으며, 행복은 반드시 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맺음 글이 인상적이었던 김소운님의 「가난한 날의 행복」. 한 단락 정도의 짤막짤막한 세 가지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식으로 연결되어 있던 그 수필은,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들의 마음에도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가난한 신혼부부의 이야기. 실직 중이던 남편은 회사에서 점심을 먹으러 돌아오는 아내를 위해 밥 한 공기와 간장 한 종지를 차려 두며, “왕후(王侯)의 밥, 걸인(乞人)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두오.”라고 적은 메모를 함께 두었다. 이 수필을 공부한 다음의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결혼하면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할 것 같아……’, ‘이렇게 자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좋겠어…...’ 라며, 보나마나 아내는 밥을 반쯤 남겨서 남편이 먹을 수 있도록 했을 거라고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던 예쁜 수필이었다.

이외에도, 자꾸만 찐 고구마를 식사대신으로 만들어 오는 아내를 타박했더니 쌀이 다 떨어져서 그렇다는 고백을 들은 남편. 진작 얘기를 하지 이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드냐고 화를 버럭 내자, 아내가 “가난한 날에 고생했던 이러한 기억이 있어야 나중에 허리 펴고 살게 되었을 때 나눌 추억이 있지요” 라며 웃었다던가……수필 속의 젊은 아내의 선견지명이 가히 부러울 만 하다.

또 하나는 사과를 팔러 춘천으로 떠난 남편이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걱정스러운 나머지 남편을 찾아 나선다. 남편이 6,25 전쟁 때 죽은 후, 아이 셋을 기르며 살아 온 여인에게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남편을 찾아 떠났다가 만나서 함께 돌아 오던 그 날, 남편이 차 안에서 내내 잡아 주었던 그 손 때문에 힘내서 살았다고 대답한다.

일본에서 유학을 하며 고생고생 하던 시절에, 나는 이 가난한 날의 행복을 가끔 떠올리곤 했었다. 어쩌면 눈 앞의 것만을 쳐다 보느라 급급하고,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배가 불러도 꾸역꾸역 집어 넣는 바보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 하나 뇌리에 진하게 각인되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수필이 바로 피천득의 「인연」이다. 동경으로 유학을 떠난 열일곱 소년이, 신세를 지게 된 일본인 가정의 영양인 아사코를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 그 수필 안에서 아사코를 사랑하게 되었다거나, 고백을 했다거나 하는 내용은 전혀 없지만, 독자(讀者)는 아사코를 향한 그의 염려와 기대를 통해 그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일생 동안 세 번의 만남을 가졌고, 스위트피처럼 어리고 귀여웠던 소녀는 화사한 목련 꽃으로 자라 나서, 백합처럼 시들어 가고 있었다.

글을 쓰는 이의 연인은 이렇게도 아름답게 이름 지워질 수 있구나……!

아사코는 마지막 만남에서도 향기를 잃기는커녕, 가장 고혹적이고 진한 향기를 품은 꽃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짧은 만남에도 아사코가 들었던 연두색 우산 덕분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셀부르의 우산이 되어 버린 청년은 아마도 일생을 통해서 그녀를 잊지 못했을 것이고, 아사코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모두가 기억하는 플레이즈. 이 수필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정곡을 찌른 표현이라 아니 할 수가 없다.

언제나 고개만 돌리면 만남과 이별이 혼재하는 타국의 도시. 우리는 언제고 돌아갈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는 관광지로, 누구에게는 주재지로, 누구에게는 거주지로, 또 누군 가에게는 평생을 살아야 할 곳으로 딱 그만큼 만치의 땅을 허용하는 이곳에서 실낱 같은 인연으로 만나게 되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를 드려야지.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일생을 못 잊는다면 못 잊은 채로, 그렇게 나에게로 와서 추억이 되어준 모든 것들에도 감사를 드려야겠다. 그렇게나 덥더니 어느새 아침 바람이 서늘한 계절이다. 계절이 바뀌었고, 또 새로운 이름의 계절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하나씩 추억이 더해지고 내 가난한 날도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지겠지……소슬한 가을 바람에 조용히 속삭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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