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랫만에 아버님께 편지를 씁니다.아버님께서 직접 읽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오늘은 좀 색다르게 제가 읽어 드릴테니, 아버님 들어주세요.
아버님께 편지를 쓰려고 생각하니,제일 처음 지호 아빠의 부탁으로 아버님,어머님을 뵈러 부산으로 갔었던 그 날이 떠오릅니다.
아버님은 아시는지 모르겠네요.걱정 끼칠까 봐,말씀드리기 힘들었지만,처음으로 저희 두 사람이 만났을 때,지호아빠는 몹시 몸이 안좋았지요.일본에서의 끼니조차 챙기지 못하는 바쁜 일상사에 쫓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어요.
얼굴이 알아 볼 수도 없을 만큼 퉁퉁 붓고,입안은 다 헐어서 조금만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어도 피가 배어 나오고,목은 퉁퉁 부어서 마치 혹이 달려 있는 것 같았고, 잇몸이 부을대로 부어서,어금니 전부를 반이상씩 갈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보다 못한 저는,이 사람을 기쁘게 해주어야 겠다 싶어, '소원이 뭐예요?' 라고 물었어요.그랬더니,'엄마,아버지 얼굴이 보고 싶어......'라며 말끝도 맺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얼마나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 ......이 사람의 부모님은 어떤 분일까?.내가 찾아가면 어떤 얼굴을 하실까......?'
그렇게 해서 처음 뵌 아버님,어머님은 제 예상보다도 더 인자하시고 따스한 분이셨습니다.
'우리 아버지,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암이다.벌써 오래됐는데,그 불쌍한 아버지한테 며느리 얼굴 보여 드리고 싶다.'
하지만,막상 뵌 아버님의 얼굴은 지호아빠의 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였고,저는 그런 아버님이 너무 좋았습니다.
예전엔 아주 호랑이같은 무서운 분이셨다고들 하지만,못난 저를 맏며느리라고 많이 예뻐해 주시고,언제나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건네시고는 하셨지요.
저희 결혼식날,식장에서 집으로 장소를 옮겨 잔치를 했었죠.친척분들이 다 모이신 자리에서 아버님은 술도 한 잔 하시고는 기분이 아주 좋으신 듯,노래도 부르시고 춤도 추셨습니다.
새신랑 일어나서 한마디 하라고 했더니,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며 '아버지 저 열심히 해서 성공하겠습니다!' 라며 목이 메이는 듯 말을 잇지 못하던 지호아빠를 기억합니다.지호아빠의 모습을 대견스러운 듯 바라보시던 아버님의 따뜻한 눈빛에, 저도 그만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아버님!지금 계신 곳은 날씨가 어떤가요?.이 곳은 삼복더위에 다들 지치고 힘이 드는 날씨입니다.아버님 계신 곳은 사시사철 꽃이 만발하고 항상 공기가 맑고 편안한 곳이리라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모든 친척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 주시고,다시 한 번 가족의 소중함을 생각하도록 하시는 아버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면서 온가족이 화합해서 아름다운 가정들을 이루어 나가기를 저또한 마음 속으로 빌어 봅니다.
떠나신 아버님을 그리워하며 많은 눈물을 흘리신 어머님도 이 자리에 계십니다.좋은 일이 있어서 즐거워 하시다가,맛있는 음식을 드시다가,손주들의 재롱을 보시다가,어머님은 문득문득 옷자락으로 눈꼬리를 훔치십니다.
어머님이 잠시라도 아버님의 곁을 비우시면, 불안해 하시고 걱정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부지불식간에 떠올라서일 것입니다.
60평생 한결같으시던 아버님의 사랑이 너무나 깊어, 어머님은 갑자기 홀로 되신 것이 서글퍼지셨기 때문일 겁니다.
언제나 아버님의 뒷 그림자만 조용히 밟으시다가, 갑자기 그림자가 사라져 버린 후에 오는 적막감이 너무나 크신 때문일 겁니다.
아버님을 떠나 보내고 많이도 우신 어머님,이전,아버님께서 옆에 계실 때 보다, 훨씬 더 약해져 버리신 어머님이 어서어서 힘을 많이 내셔야 할텐데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하늘의 부름을 받습니다.한 번 태어나 한 번 가는 인생사..... ...... 아버님,부디 빨리 가셨다고 생각지 마시고 먼저 가셔서 저희들 자리 만들어 주시는 거라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저 먼 곳에서도 어머님 언제나처럼 사랑해 주시고,친척분들과,저희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이들이 될 수 있도록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봐 주세요.
저희는 아버님께서 하셨던 만큼은 절대로 따라가지 못하겠지만,아버님이 비운신 자리를 미력하나마 채워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아버님이 저에게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
'큰아이야! 내가 없어도 진이 어마이한테 잘해 줘라.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여자다.진이 어마이만 생각하면...... ......'
피눈물을 쏟으시며 저에게 하시던 그 말씀, 절대로 잊지 않고 제 작은 마음 속에 꼭꼭 새겨 두었습니다.아무 걱정 하시지 마시고 편안히 쉬세요.
아버님의 편안한 휴식을 마음으로부터 기원하며......
2002년 7월31일
큰며느리 신송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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