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한일 친선 축구경기를 한다.생각같아서는 호짱 들쳐 업고 요요기 경기장으로 뛰어가고 싶지만 그것도 안되고 좀 답답하다.정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 큰 남자들이 공하나 몰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게 참 이상하게 보였는데,월드컵을 계기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특히 일본이랑 붙을 때는 필사적으로 응원을 하게 된다.한국 사람들은 누구나 다들 그렇겠지만.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하는데......지난 번에 한국에서 일본이랑 붙었을 때 끝나기 30초 전에 들어간 한골때문에 다시는 축구를 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다.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 며칠동안 뉴스에서 축구얘기만 나와도 신경이 곤두서곤 했었다.다시 그렇게 기분나빠질거라면 차라리 축구에 관심을 안가지는게 상책이다 싶으면서도 벌써 내일있을 경기에 온신경이 다 가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 일본은 불법 체류자와 위법자들의 단속이 정말 심해서 며칠 전에도 신주쿠,아카사카 일대에서 한국 사람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150명 넘게 잡혀 갔다고 한다.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무더기로 불체자들을 잡아 들이고 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 모르겠다.살벌한 세상이다.
나조차도 왜 불법으로 일본에서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멀쩡하게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돌아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하지만,불법으로 살고 있다고 해서 전부 나쁜 일만 하는 것도 아니고,한국에 있는 부모,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 안타깝다.
내가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 한국식 싸우나는 지금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여성전용으로 손님이나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여자들이었는데,사무실 직원 몇명을 빼면 전부 한국 사람들이었다.나처럼 유학을 하고 있던,카운터 업무를 보던 학생들 열댓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오십명 정도 되는 분들이 전부 한국에서 사장이 데리고 들어 온 불법 체류자들이었다.
싸우나니까 때밀고 맛사지하고 지압을 하는게 그 아줌마들의 주 업무였는데,여기는 어찌나 통제가 심한지 마치 5호 담당제처럼 서로 입조심을 하고 조금 친한 사이라도 친한 척을 하면 안되는게 룰이었다.
우리 유학생들의 업무조건은 시급 900엔에,6개월을 채우지 않고 그만 둘 경우는 언제 그만두던지간에 6개월분의 하루 100엔씩(180일X100엔이니까 얼마야?)을 벌금으로 물고 나가야 했다.가난한 유학생들에게는 엄청난 출혈이지만 현명한 아이들은 벌금을 물고라도 얼른 그만둬 버리고,나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애들은 끝까지 6개월을 겨우 채우고 그만두곤 했었다.그래서인지 이곳은 언제나 아르바이트생들은 뉴페이스가 대부분이다.
그리고,매일매일 불체 아줌마들에게 잔소리 교육을 시키고,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줌마들에게 사장과 똑같은 어조와 톤으로 통역을 해야 했고,한달에 한번씩 미팅이라고 해서 2시간씩 붙들어 놓고 일방적으로 한국인들은 정신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정신교육을 받았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이 싸우나에는 카운터쪽으로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사장맘 같아서는 목욕탕에까지 전부 설치하고 싶었겠지만 그렇게 까지는 차마 못하고 카운터에만 두대를 양쪽으로 달아서 특히,심야에 일하는 아이들이 쓸데없는 잡담을 하거나 험담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곤 했었다.
카운터 뒤로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낮에는 일본인인 남자 총무가 아침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짱박혀서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를 감시했다.손님들이 그걸 알면 아마도 기절초풍하겠지.가끔 부끄러움이고 뭐고 없는 손님들은 카운터에까지 알몸으로 나오곤 했었다.
모두 퇴근하고 난 후에는 비디오를 찍어서 다음 날 아침에 밤새 돌아간 테이프를 점검하곤 했었다.혹시나 아르바이트생들이 쓸데없는 가게 욕이나 하지 않는지,잡지를 보거나 잡담을 하는지 등등.......사장이 얼마나 의심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여러가지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어느 하나 불법체류자를 고용해서 돈을 갈취해 먹는 사장에 대해 신고를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일하는 아이들이 다들 어린 유학생들아니면 불체자들이고,자기 엄마 나이뻘 되는 아줌마들에게 혹시나 불이익이 돌아갈까 봐 신고를 못하는 것도 있었고,먹고 살기가 너무 힘이 드니 그만두고 나면 다시 생각조차도 하기 싫어지기 때문이었던 같다.
내가 그 싸우나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지 일주일 되던 날,사장이 면담을 하자고 한다고 지배인이 전해 주었다.무슨 일인가 싶어 지배인과 함께 사장에게 가니,다짜고짜 학비를 빌려 주겠으니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었다.100만엔이면 되겠냐고.물론,학비때문에 고민을 한창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이게 무슨 꿈이 아닌가 싶었는데,그렇다고 무턱대고 빌릴 수는 없는 것이어서 조심스럽게 사양을 했다.그랬더니,그 자리에서 50만엔이 든 봉투를 들이 밀면서 아쉬울테니 쓰라고 한다.천천히 갚으라는 말까지 함께.
사장실을 나오면서 어찌나 고맙던지 눈물이 나왔다.지배인을 붙잡고 이게 꿈이 아닌가 하며 펄쩍펄쩍 뛰었다.그 다음 날부터 나에게 새로운 시프트가 주어졌다.아침 9시반부터 오후 5시까지 사무실에서 근무,오후 5시부터 밤 11시까지 싸우나 카운터 업무.오전 근무와 오후 근무 사이에는 쉬는 시간이 따로 없어서 밥을 먹기 위해 10분 정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시급으로 따지면 무지하게 돈을 많이 벌었겠지만 월급제였다.
그 때 같이 살았었던 순보기는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꼭두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돌아오는 생활,마침 방학이라 휴일도 없이 꼬박 두달을 그렇게 일하다가 개강하기 바로 전날,내일부터는 사무실로 나오지 말고싸우나로 바로 출근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다음 날부터 다시 시급제로 바뀐다는 내용도 함께.나처럼 유학생들에게 학비를 빌려주고 나서 이렇게 혹독하게 일을 부려먹는 곳이었다.
결국,초저녁만 일을 하자니 월급이 너무 작아서 심야로 돌려서 아침까지 일을 했다.꼬박 6개월을 일하고 그만두었는데,나야 뭐 손해본 것은 없었다.사장이 알면 배가 아프겠지만,싸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따로 번역일을 하고 있었는데,몰래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일하는 시간에 제법 번역일을 많이 했었다.어차피 밤을 새고 손님이 왕창 몰려 오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상관없는 일이었다.그 때 나랑 함께 일했던 아이들과도 아주 친해서 서로서로 도와주고 감싸주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 나쁜 놈 사장은 아는 사람중에 국회의원이 많아서 자기는 불체자를 써도 절대 안잡혀 간다고 큰소리치던 것이 생각난다.아직도 예전같은 시스템인지 아님 개과천선을 해서 인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게 망하지는 않았나 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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