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연재하고 있는 잡지에 실린 글입니다>
3년 전만 해도 컴퓨터라고는 리포트 쓸 때나 만져보던 컴맹이었던 내가,이제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운영하게 되었다.처음 남편에게서 홈페이지,메일,프로바이더 등등의 단어들을 들을 때는,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도통 알아 들을 수가 없었는데,홈페이지를 만드는 남자와 결혼해서 살다 보니 이제는 내 스스로 갱신도 하고 리뉴얼에도 참가하게 된 것이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내 주변의 사람들 중에서 컴퓨터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무대예술 출신이라 주변의 친구나 후배들도 대부분이 아날로그인데다,가난한 유학생이라 큰맘먹고 컴퓨터를 살 수도 없었던 탓도 있다.
요즘,유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 보면 유학생활에서 느끼는 괴로움이나 문제점들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하거나 여러가지 정보들을 교환하는 것을 자주 봏 수 있다.내가 학생시절에도 이사람들처럼만 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정신적으로 윤택한 유학생활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
처음,내가 홈페이지를 만든 곳은 회원가입만 하면 무료로 다 만들어져 있는 홈페이지에 입주하는 형식의 검색엔진이었다.내용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지만 이미 틀이 다 짜여져 있는 홈페이지에다,누구나 겪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상생활을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용량이 커지고 디카로 사진들을 찍어서 올리기 시작하고 자기 코너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서버를 하나 사서 내 이름으로 등록을 하고 다달이 늘어나는 용량때문에 점점 큰 서버로 바꿔 나가게끔 되기까지 딱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이제는 유료 사이트로 전환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도 있지만 한사람이라도 와 주면 너무나 고맙던 처음의 마음 그대로 순수하게 지켜 나가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 인터넷 세상이라는건 한마디로 별천지였다.내가 일본에 올 때만해도 386이 어떠니,486이 어떠니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정말 말그대로 별천지 그 자체였다.대학 논문을 쓰려고 자료를 찾는데도 도서관보다는 인터넷을 더 많이 뒤지게 되고,소설이나 만화를 보기 위해 서점으로 가기 보다는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훨씬 빨랐다.
내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리면 한국에서 가족들이 실시간으로 보고 댓글을 달고 전화가 걸려 온다.국제 전화비가 아까우니 홈페이지를 통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 지내는지 확인도 할 수 있게 되었다.우리 가족의 화목함은 어쩌면 나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더더욱 굳건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집에서 육아와 가사일에 전념하고 있는 주부인 나는,이 홈페이지가 유일한 세상과의 접촉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이 홈페이지를 통해 생각하고 공부하고 커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온라인상에서 아이디로만 알고 지내던 주부님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나는 모두들 당차 보인다고 하는 외모와는 달리 소극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라,자주 가는 사이트에 댓글 하나 다는데도 신중하게 한참을 고민한다.불특정다수의 누군가가 내글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확하고 반드시 전해 주고 싶은 정보가 아니면 함부로 쓰지 못했었다.그러면서 어떻게 내 홈페이지에는 그날 그날의 얘기들을 그렇게 공개할 수 있는지 내 자신도 의아하지만 내 홈페이지는 그렇게 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오지는 않기 때문에 안심하는 부분도 없지않아 있다.
물론,온라인상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어떤 사람들이 나올지 기대가 되는 반면,처음 만나서 서먹서먹하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도 되었다.둘째 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수퍼에도 마음대로 못가고 집에만 있으려니 어찌나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쌓이는지,전혀 관심이 없던 오프모임에 나가겠다고 하니 남편도 적지않이 놀란다.
모임이 있기 하루 전까지 갈까말까를 고민하고 있으니 남편이 더 적극적으로 나가 보라고 권해 준다.나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오라고 쥐꼬리만한 자기 용돈에서 오천엔을 뚝 떼서 준다.꼭 다 쓰고 돌아오라는 말이 참 눈물나게 고맙다.
주부모임에 나갈 시간은 임박해 오는데,화장품 케이스를 아무리 찾아도 없다.아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어서 조용조용 이방 저방을 다 찾아도 눈에 띄지를 않는다.한 10여분을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며 의심나는 곳을 다 열고 닫고 해보아도 그 흔한 립스틱 하나가 안나온다.26개월 된 큰 딸이 화장품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서 케이스를 숨긴다고 숨긴 것이 정작 찾으려니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겨우 립스틱 하나를 찾아내서 바르고 모임에 나갔더니 아이가 둘인 사람은 나랑 또 한주부밖에 없다.스무명가까이 모인 주부들 중에는 옆에 아이만 없으면 처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주부들도 있고,온라인상에서 만나 오프모임도 자주 갖는 친한 사이들도 많았다.나는 처음만난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지는 편인데 인원이 너무 많으니 눈길만 주고 서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겨우 주변에 있는 몇몇과 계속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어서 좀 서운했다.
그리고,애 둘 뒤치닥거리에다 집안일 한답시고 팍 퍼져서 살던 나의 안이함에 내 스스로가 조금 환멸을 느꼈다고나 할까.이쁘고 세련된 주부들을 부면서 나이가 들어도 절대 저렇게는 되지 말자 싶던 아줌마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는 내가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여자들이 밥먹고 할 짓이 없으니까 떼거지로 모여서 수다나 떨고 한다고 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하지만,주부들이 세상과 함꼐 호흡을 할 수 있는건 인터넷,텔레비젼,신문이외에는 거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아이들을 기르며 좋은 엄마,좋은 아내로 가정을 평화롭게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여자도 어느 정도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그리고,외로운 외국생활을 하다 보니,한국같으면 집밖에만 나가면 어디서건 만날 수 있는 마음맞는 또래의 주부들을 여기서는 인터넷 온라인으로 만나기도 사실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져서 친구가 되고,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게 되고,장을 보러 다니고,아이들끼리 친구가 되어 뛰어 노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가 좋은지, 앞으로도 이런 좋은 만남을 자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큰아이는 올 8월에 다니던 보육원을 그만두게 되었다.아직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맡기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큰아이가 보육원을 그만 두어야 한다는 사실이 많이 가슴 아팠다.보육원에 가지 않으면 친구를 사귈 수도 없는 것이 일본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프모임으로 자주 만나다 보면 아이들도 서로 친구가 되어서 외로움을 모르고 자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나처럼 애가 둘이나 되면 어디 마음대로 다니지도 못하지만,외로운 타지생활에 어렵게 만난 한국 주부들끼리 동병상련의 깊은 정을 느끼고 돌아온 뜻깊은 하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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