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제가 잡지에 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누구하고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별로 내 기분을 어필하는 편이 아니었다.그렇지만 둘째아이가 태어나고 부터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처럼 당하고는 가만히 못있는 인간이 되었다.그래서 애 둘 가진 여자는 건드리면 안된다는 말이 나온 모양이다.
그런데,나는 이런 나의 변화가 너무나 흡족하다.머리가 나빠서 그런건지,지금까지는 바로 맞받아치지도 못하고 꼭 뒤에 가서 혼자서 조용히 흥분을 삭이거나,좋은게 좋은거니까 하고 꾹꾹 눌러 담아왔기 때문에 나름대로 무척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왔기 때문이다.내가 스스로의 변화에 눈을 뜬 것은 며칠 전 있었던 옆집 할머니 쯔쯔미상과의 한판 승부때문이다.
우리가족이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은 작년 9월이었다.이사를 온 일주일 후,나는 꽃집에서 손바닥만한 작은 화분을 열몇개 준비해서 인사도 할 겸,같은 맨션 식구들에게 돌리기로 했다.옆집의 쯔쯔미상은 혼자사는 할머니인데 내가 들고 있는 화분을 보더니 대뜸 필요없으니 가져가라고 했다.
일본사람들은 불필요하게 거창한 선물이나 부담이 되는 것들을 좋아하진 않기 때문에,실례가 안되는 범위에서 신중히 골랐는데 막상 거절을 당하고 나니 무안하기 이를데 없었다.그렇다고 다시 들고 오기도 뭐하고 해서 부담갖지 말고 받으시라고 통사정(?)을 해서 주고 돌아오는데 기분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쯔쯔미상은 인상이 차갑고 이쪽에서 인사를 건네도 언제나 무뚝뚝하게 지나가 버리곤 해서 큰아이는 옆집 할머니만 보면 내 다리 뒤로 숨어버리곤 했다.
한달여 쯤 지난 후,쯔쯔미상과 우연히 한 엘레베이터를 타게 되었다.언제나처럼 인사를 해도 안받길래 아이랑 어색하게 서 있는데 대뜸,”이사를 하기 전에 그 집에 대해서 잘 안살피나 보지?” 하는 것이었다.”네?”하고 되물으니 쯔쯔미상 말인즉슨,자기는 이 맨션에 십몇년을 살았는데,우리집에 이사오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6개월을 못버티고 나가더라는 것이다.
특히,아이가 있는 경우는 더 빨리도 나가는 것을 봤으며 내가 그 이유를 물어도 자기도 모르겠다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얼른 이사나가는게 좋을거야.불행의 집이 아닌가 싶어.그리고 여기서는 겨울을 못나.어찌나 추운지 나는 다른 집으로 피신을 갈 정도라니까.이불속에서도 손발이 꽁꽁 얼어요.애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안돼”
“그럼 어쩌죠?”
“그러게 왜 진작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어.1년내내 퀴퀴한 냄새에 곰팡이에 말이 아니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딴집 알아보는게 좋을걸”
그날은 우선 이 정도로 일단락되었는데,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말을 들으니 너무 찜찜했다.그 후로도 몇번 똑같은 말을 듣고는 있는 커텐에 또 한장씩을 더 사고 두꺼운 이불을 사서 그 매섭다는 겨울채비를 했다.
며칠 뒤,누가 바쁘게 초인종을 눌러대길래 나가보니 또 그 쯔쯔미상이었다.”내가 우리 손자주려고 만든 카스테라인데 집에 아이 주라고 가져왔어.”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구나!내가 잘못 생각했어’라고 반성을 하며 고맙게 받았다.그런데 갑자기,
“나는 일제시대 때 한국에 가서 일본어를 가르쳤었어.그 때 제자들이 지금도 나를 찾아오곤 하지.그런데 ‘조센징’들이 일본에 많이 건너오잖아.다들 여기와서 무슨 일들을 하고 사는거지? ”
”이런저런 일을 하겠죠”.라고 대답하면서도 몇번이고 나오는 ‘조센징’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쾌감을 속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애기엄마는 밤에 어디 일나가? 당최 사람이 사는 집같지가 않아.밖에서 이렇게(우리 창문을 엿보는 시늉을 하면서) 소리를 들어 보는데 밤에 없지?”
”나가긴요,애가 7시쯤 되면 자니까 그 다음은 불을 약하게 켜놓고 있어요” 쯔쯔미상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 자기가 몇번이나 살펴 봤지만 사람 소리가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럼 밤에 일하면 애는 어디다 맡겨?아저씨는 아주 늦게 귀가하던데 장사하나?”
아니라니깐 이 할망구가……그래도 할머니니까 참자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마우리지으려는데,”근데 아이가 불쌍해.여기는 집집마다 교류가 아주 활발한데 댁에 식구들만 물위의 기름이야.외국인도 사람인데 그럼 안되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갑자기 아이가 불쌍하다는 둥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빠서 어쩔 줄을 몰랐지만 나의 쓸데없이 강인한 인내심으로 참았다.며칠 후,쯔쯔미상이 또 집으로 찾아왔다.이번에는 찰밥을 만들었다면서 아이 먹이라고 가지고 왔다. 받은 것도 있고 뭔가 돌려 주어야 하는데,쯔쯔미상은 내가 자기네 집의 초인종을 누르면 절대로 열어주지 않는다.문을 여닫을 때 아주 세게 탕탕거리는 버릇이 있는지라,집에 돌아오면 누구보다 잘아는데 집에 없는 척을 하는 것이다.
“어머 감사합니다.잠깐만 기다리세요” 나는 전부터 준비해 두었던 꾸러미를 꺼내서 쯔쯔미상에게 건넸다.
“아니 정말 예의가 없는 사람이군.이런 식으로 나오면 인간관계가 엉망이 된다는 걸 왜 모르지? ”라며 갑자기 화를 내는 것이었다.아마도 뭘 받은 자리에서 바로 보답을 하는 것이 결례라는 뜻인 모양이었다.
“네,저도 잘 아는데 항상 댁에 안계시더라구요”
“그건 그렇고,댁의 아이는 왜 이렇게 생기가 없어?아이들은 뛰어 다니고 소리지르고 울고불고 하면서 크는게 정상인데 몸에 뭔가 문제가 있는거 아니야?”
우리 아이가 너무 산만하고 정신이 없어서 나는 힘이 들어 죽겠다.남의 애한테 어쩌면 저렇게 막말을 할까.게다가 그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우리집에 대한 나쁜 말을 한자리에서 몇십분을 하길래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관리인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물론,쯔쯔미상의 이야기는 한낱 괴변에 불과했고,우리가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의사가족인데 10년을 살다가 나갔으며,집집마다 거의 교류도 없다고 했다.관리인이 쯔쯔미상에게 주의를 준 듯,다음부터는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집으로 찾아오는 일도 없어졌다.
그런데 며칠 전,오랫만에 도어노브를 돌려가며 방정맞게 초인종이 울리길래 쯔쯔미상이겠거니하고 문을 여니,“휴~~~뭐가 썩고 있는거 아냐? 냄새가 지독해”하며 코를 쥐고 손을 내리 젖는다.이 할머니가 왜 또이래 싶으면서도 멀뚱히 쳐다보고 있으니,
“내가 이맨션에만 20년을 살았는데,여긴 환풍기 안켜면 이런 냄새가 나.집에 환풍기가 안돌아가길래 이상해서 물어보는거야”
“복도까지 무슨 냄새가 나나요?”
“안나지.그냥 환풍기가 안돌아가길래 물었지.아이 키우면서 위생적으로 해야지”
“저희 공기 청정기 두대나 있는데요.” 두번이나 이말을 반복하고 나니,
“그런데 왜 이렇게 썩는 냄새가 나누?”라며 또 손을 내젓고 코를 막는 시늉을 한다.갑자기 지금까지 쌓여있는 기분나쁜 감정이 폭발을 한 모양이다.
“그건 당신이 참견할 일이 아니죠.이집에 이사온 이후로 당신때문에 기분나쁜 적이 한두번이 아녜요.당신이 뭔데 맨날 잔소리를 늘어놓냐 말예요? 당장 돌아가요.” 하며 우리 집 문에 몸을 반쯤 끼우고는 당장이라도 들어올 기세로 서 있던 쯔쯔미상의 몸을 밀쳐냈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귀가 없어? 당장 나가! 당신때문에 골치가 아퍼 죽겠어!”
나는 있는대로 고함을 지르면서 들어 오려고 하는 쯔쯔미상을 매몰차게 밀어 내고는 문을 꽝 닫아 버렸다.나중에 이야기를 들은 남편도 아주 잘했다며,이제부터는 당하고만 살지 말라고 한다.탕탕거리며 열고 닫던 문소리도 조용해지고,복도에서 혼자 궁시렁거리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버릇도 없어지고,일부러 그러는듯 쿵쿵거리며 벽을 쳐대서 아이들이 놀라는 일도 없어졌다.
역시 강자에게는 약한 일본인의 근성이 발동된 모양이다.나또한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거리던 버릇은 쓰레기통에 던져 넣기로 했다.자고로 두아이의 엄마는 건드릴 것이 못된다는 것이 맞는 말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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