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잡지에 연재중인 글입니다]
입학하는 새내기들에게……
일본으로 유학을 와서 어느덧 강산 한 개가 변하도록 살고 있습니다.한국과 별반 다를 것도 없고 때로는 각박해서 못살겠다 싶으면서도,한번 둥지를 틀고 나니 마음먹은 대로 털고 떠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습니다.
이제 입학하시는 분들에게는 미지의 세계로의 첫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자칫,치열한 삶터가 될 수도 있겠지만,부디 첫 단추를 잘 끼우셔서 두고두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국문학과를 졸업하고,방송국에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처음에는 방송 연출을 공부할 목적이었지만,막상 일본에 오니 일본의 전통연극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대학시절에 극단에 입단시험까지 보러 다닐 정도로 연극을 좋아했었거든요.
방송과 연극은 비슷한 종합예술 분야였기 때문에 그리 크게 흔들림 없이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간혹,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과,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아서 선택을 할 수 없다는 분들이 계십니다.유학 생활의 성패는 바로 자신이 어떤 공부를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듯 합니다.
방송을 예로 들자면,막연히 ‘방송공부를 하고 싶다’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텔레비전,라디오,PD,아나운서,조명,대본등등 세분화 시켜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어떤 분야를 공부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뚜렷한 좌표 설정이 되어 있지 않은 분들은 지금 이시기에 고민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외국으로 유학을 간 학생들 중에 일본만큼 유학생의 아르바이트가 생활화되어 있는 경우는 드문 듯 합니다.일본에서는 외국인 유학생이라도 [자격 외 활동 허가서]만 있으면 정해진 시간 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데다,물가가 워낙 비싸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몸이 아파서 학교는 결석할지언정,생활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는 쉴 수가 없는 경우도 허다합니다.게다가,요즘은 일본도 심각한 불경기라서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합니다.공부를 하러 이 먼 곳까지 와서 공부보다는,아르바이트에 목숨을 거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결국은 주객이 전도가 되어서 공부는 뒷전이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아 왔습니다.
어느 나라보다 일본으로 유학을 온 학생들이 제일 가엾다는 생각이 많이 들곤 합니다.일본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차별의식,비싼 물가,부모님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므로 어찌하던 제 손으로 벌어 보겠다는 갸륵한 심정의 발로로,언제나 몸을 혹사 시키게 되고,공부와 아르바이트의 병행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갈등을 하곤 합니다.
너무 흔한 말 같지만,언제나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를 잊어 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잠을 못자고 그 시간에 접시를 닦고,신문 배달을 하고,야끼니꾸의 철판을 닦는다손 치더라도,그것들은 모두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힘들어도 한번 해보겠다는 뚝심이 있으면 전쟁을 하듯 살아도 마음 하나만큼은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처음 일본에 와서 했던 일은 한국 드라마를 더빙해서 배달하는 아르바이트였습니다.가와사키에서 일본어 학교를 다니며 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하루 일하는 시간이 15시간이었습니다.벌써 10여년 전의 이야기입니다만,자전거로 가와사키에서 요코하마까지 왕복 2시간 정도는 거뜬히 다녔습니다.
일본어 학교 맞은 편에 볼링장이 하나 있었는데,학생 요금이 아주 저렴해서 학교 아이들이 자주 다니곤 했습니다.수업이 끝나고 20분만 지나도 바로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전 아이들이 노는 걸 10여분 정도 구경하다 아쉽게 발길을 돌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만 해도 어린 마음에 놀고 싶기도 했지만,그 집에서 살고 있는데다,주인 언니의 어린 아들을 돌봐 가며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항상 허둥지둥 돌아 가야만 했습니다.그렇게 시작하면 새벽 5시경까지 눈코 뜰 새가 없었지요.
흔히들,한국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일본어가 늘지 않는다는 말들을 하곤 합니다.그런데,아르바이트도 회화실력을 높이는데 중요하지만,뭐니뭐니해도 역시 수업시간에 바짝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대학이나 전문학교에 진학하신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밑줄 긋고 노트에 받아 적어도 다시 안보면 무용지물입니다.그저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한번 듣는 것 만큼 득이 되는 게 없더군요.
일본어 학교에 다니시는 분들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하루 30분씩 예습을 해보시면 어떨까요?.모르는 단어만 미리 찾아서 적어 두고,어렵더라도 한번만 읽고 해석해 두면 수업시간이 그렇게 술술 넘어갈 수가 없답니다.남들보다 한번 봐 두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질문에도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도 있고,그러다 보면 수업이 아주 재미있어 지더군요.
처음 일본에 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물론,시간이 그만큼 흐른 탓도 있지만 너무나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일본에서는 그야말로 자존심 같은 건,잘 말려서 벽장 속에다 집어 넣어 두고 살았던 듯도 합니다.
한국에서라면 선뜻 하기 힘들었을 식당 종업원에 설거지 담당에,배달부에,베이비 시터까지,험하다는 일은 신문배달 빼고는 다 해본 것 같습니다.한국에서는 그래도 명색이 아나운서였는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스스로 너무 주눅이 들어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고민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무서울 것 없이 자신만만하고 패기 넘치던 그 시절의 열정이 그리워지기도 하구요.그렇지만,일본에서의 10년간,한국인의 긍지를 버리고 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몸은 힘들었지만 바닥까지 내려 가다 보면 다시금 올라가야겠다는 새로운 용기와 힘이 생기곤 하더군요.
힘들고 어려운 유학생활 이었지만,절대로 혼자서 이겨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낭패를 당했을 때,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쉬는 날 없이 연일 계속되는 아르바이트에다 시험기간까지 겹쳐서,수면부족으로 계단에서 졸다 떨어져 발에 금이 갔을 때는,같은 기숙사의 친구들이 매일매일 당번을 정해서 자신들의 식사에서 제 몫을 떼서 갖다 주기도 하고,쉬고 있는 동안 해고라도 당할까 봐,저 대신 아르바이트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있는 돈을 싹싹 긁어서 학비를 내고 난 다음,학교에 갈 전철비가 없어서 집에 있었더니,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꿈에 제가 울고 있더라고 합니다.학교 갈 차비가 없다고 했더니 자신의 금쪽 같은 생활비에서 얼만가를 제 통장구좌로 보내 주었답니다.덕분에 전 학교에 갈 수가 있었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또 학비가 모자라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푸념을 하고 있는데,선배 하나가 학교 바로 앞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뛰어 가더니 저금통을 하나 들고 오는 것이었습니다.배를 갈라 보니,만엔 조금 넘는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염치없이 그 돈까지 빌려서 무사히 학비를 낼 수가 있었지요.
학교를 다니면서 저는 제 때에 학비를 내 본 역사가 없습니다.억지로 다 내고 나면 새 학기의 새로운 통지서가 날아와 있곤 했습니다.학교를 다니면서 언젠가는 이러다가 학비를 못 내서 쫓겨 나거나 내가 자퇴를 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며,그래도 하는데 까지는 해보자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더니,제 졸업논문이 우수 논문으로 뽑혀서 졸업식장에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120년 전통의 엄격한 저희 학과에서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주는 상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은 언제나 그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고 합니다.사람이 견디지 못하는 시련 따위는 없다고 합니다.지금 너무나 힘들어서 모든걸 때려 치우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밑바닥까지 한번 내려 가 보라고 오히려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밑바닥까지 내려가고 나면 다시 올라 오는 방법밖에는 없으니까요.꿈★은 이루어 집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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