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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어 학교를 다녔던 가와사키는 카나가와현에 있었다.카나가와현이라고 하면 잘 몰라도 요코하마가 있는 곳이라고 하면 아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가와사키는 요코하마까지 급행을 타면 10분 정도만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타마가와라고 하는 강하나를 건너면 오오타구라고 하는 동경도의 제일 끝동네에 바로 인접해 있는 곳이었다.
가와사키시는 시자체가 부자여서 여러가지 복지시설이 잘되어 있는 곳이었다.겨울이 되면 길다랗게 늘어선 가로수에 일루미네이션이 오모테산도 부럽지 않게 장식이 되고,워낙 한국인이 많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시약소안에도 한국어로 된 자료들이 많이 비치되어 있었다.
가와사키에서 2년동안 살면서 가장 할말도 많고 기억에 남는 비디오 언니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번으로 미루기로 하고,우선은 내가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친하게 된 일본인 쯔쿠다상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볼까 한다.이 쯔쿠다상은 내가 2년가까이 일했던 비디오 가게를 도중에 잠시 쉬었을 때 알게 되었다.
지금도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일본어 학교 시절 친구들이 4명이 있는데,그날은 그중의 한명과 눈요기겸 모아즈 백화점으로 윈도우 쇼핑을 나갔다.그 커피숖이 있었던 층은 후루기(古着.헌옷)라고 해서,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오래된 옷들,누가 한번 입고 내놓은 옷들을 팔고 있는 옷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이 후루기를 아주 좋아한다.자신의 감각에 맞는 옷들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일본 젊은이들의 영원한 아이템인 레이어드 룩의 소재로 쓰일 조각옷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는 후루기를 파는 가게들이 상당히 많다.그날 쇼핑을 나간 백화점은 이런 후루기라던지 약간 시장풍의 부인복들을 주로 파는 B급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친구와 이리저리 옷구경을 하며 다니다가 다리가 아파와서 잠시 쉬기로 했다.일본의 백화점에는 옥상공원이라던지 코너마다 의자를 배치해 두어서 손님들이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곳이 많이 있다.우리는 잠시 앉아서 쉴만한 곳을 찾다가 플로어 중간에 동그랗게 테이블들이 모여 있는 가건물처럼 만들어진 곳으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의자에 앉자마자 나는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카운터처럼 생긴 테이블에 몸을 완전히 가리고는 눈만 빠꼼하게 뜨고 우리쪽을 보고 있더니 스르르 일어나려고 하는 것이었다.쉬라고 만들어놓은 휴게실인줄 알았던 그곳은 실은 커피숖이었고 나랑 친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가 버릴까 말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도그럴 것이 우리같이 가난한 유학생이 커피숖이 가당키나 한일인가 말이다.(10년전 얘기입니다 --)자동판매기에서 당시 110엔 하던 음료수 한개를 친구랑 나눠서 조금씩 마시던 시절이었는데......게다가 난 알바까지 쉬고 있지.릴레이 전편에 카페 이야기를 썼지만,인테리어가 멋진 카페가 없나 싶어 찾은 것 뿐이지 들어가서 마시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어쩌지......저 남자가 슬금슬금 우리 눈치를 보며 다가 오려고 한다.지금 일어날까......말까......'
하는 사이에 메뉴판을 들고 벌써 성큼 다가와 있다.허걱~~~!
테이블에 물이 놓이고 나니 친구랑 나는 이제 도저히 못빠져 나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솔직히 물까지 받고도 가게를 나와버린 적도 있었지만,우리는 다리가 너무 아프고 기운이 쪽 빠져 있었던 터라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냥 커피를 한잔씩 마시기로 했다.
다시 그 어벙해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고 우리는 브렌드 커피를 시켰다.자세히 보니 그 남자는 아침에 머리를 안빗고 나온건지 아니면,손님이 너무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은건지 몰라도 뒷머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었다.우리는 어쨌거나 커피 한잔으로 확보한 우리만의 공간에서 열심히 떠들고 수첩을 꺼내서 뭔가를 적고 멍하니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셨다.
그 가건물같은 가게에는 더이상 손님이 들어오지 않았고,카운터 뒤로 몸을 완전히 숨긴 그 남자와 수다장이 외국인 여자 두명이 진을 치고 앉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있었다.그런데,다행이었던건 이 어벙해 보이는 남자가 뽑은 커피가 아주 맛이 있었던 것이었다.커피잔도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암튼,열심히 이넘의 일본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건지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는데,갑자기 이 남자가 또 스르르 일어나서는 꼼지락꼼지락 뭔가를 하는 거였다.그러더니 금방 뽑은 듯한 커피를 들고 우리에게로 다가오더니 빈 커피잔에다 넘치기 일보직전까지 따라주는게 아닌가!.
"안시켰는데요?"
"どうぞ、ただですから。（그냥 주는거예요~)"
"와~고마워요~!"
'햐~~~세상에 단무지 한쪼가리도 돈을 받는게 일본넘인데......시상에 별일도 다 많다~!.'
신이 나서 친구와 나는 덤으로 설탕이랑 프림도 두개씩 받아서 타넣었다.꽁짜가 역시 맛이 있지~~^^* 난 커피가 너무 좋은데 평소에 많이 못마셔서 정말 아쉬움이 많았었던 것이다.패밀리 레스토랑이 아니면 커피 리필은 있을 수 없는 일본에서 이렇게 공짜로 리필을 받아본 건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암튼,외국인 여자 둘이서 뭐라고 떠드는지는 몰라도,혼자서 가게를 보고 있으려니 얼마나 무료하고 우울했겠는가.우리가 가고 나면 또 혼자서 저 카운터 뒤에 웅숭거리고 앉아서 마냥 오지도 않을 손님을 기다리기가 지루했을 것이다.이렇게 해서 나는 이 어벙하고 순진한,웃으면 앞니가 하나 없고 나머지 이들은 한국의 보라색 옥수수를 연상케 하는 쯔꾸다상이랑 알게 된 것이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주인인 듯한 사람이 들어왔다.콧수염에 배가 나오고 뚱뚱한 그 사람은 이마는 벗어지고 뒷머리를 새꽁지처럼 묶고 알로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마치 명랑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캐릭터처럼 보였다.마침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던 나는 또 다시 커피를 가지고 온 남자에게 혹시나 아르바이트를 쓸 생각이 없는지를 물어 보았다.그랬더니 장사가 안되서 알바는 무리일거라고,혹시나 모르니까 주인에게 물어보고 싶으면 곧 돌아오니까 그 때 물어 보라는 언질을 받아 두었었다.
"저......혹시 아르바이트 쓰실 생각은 없으세요?"
하도 손님이 안들어오니 우리가 앉아있는 걸 보고 감격한 듯 보이는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하루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고,커피를 마실 수 있고,게다가 아르바이트비까지 받을 수만 있다면......꿈같은 이야기......!.주인은(하가상) 역시나 장사가 안되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저 써주시면 가게 매상은 제가 올려드릴 자신이 있어요.학교 끝나자마자 와서 저녁 문닫을 때까지 있할게요."
주인의 유니크한 캐릭터가 내마음을 편하게 했나보다.되지도 않은 일본어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미소를 지으며 듣고 있는 주인과 점장.이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면 참 좋겠다 싶었다.결국,내가 제대로된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까지만이라는 전제하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얏호~~! 커피는 맘대로 마시겠구나~~!^^*'
일을 시작하고 나서 보니 가게가 정말로 너무 한가했다.쯔꾸다상은 카운터 뒤에 쪼그리고 앉아서 매일 만화책을 읽는데 열중하고,난 테이블에 앉아서 이공상 저공상을 하다가,백화점 구경을 다니다,다시 돌아와서 무료하게 잡지를 뒤적이곤 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주인에게 매주 한번씩 라이브를 하자고 건의했다.찌라시는 내가 만들고 손님들에게 돌리는 것도 내가 하겠다.누구든 노래하는 사람을 불러서 통기타로 라이브를 시키는거다.백화점에 온 손님들이 노랫소리를 듣고 몰려올 것이고,일단 라이브가 입소문을 통해서 퍼지면 단골손님이 모이는건 시간문제다.
나는 열심히 찌라시를 만들어서 백화점 앞 상가에 나가서 돌렸다.한번에 100장 정도를 만들어서 한장한장 손으로 쓰고 색칠을 하고,찌라시를 들고 오는 손님에게는 쿠폰을 주는 식으로 머리를 썼다. 하가상은 같은 오키나와 출신으로 통기타 가수를 하고 있던 친구를 부르기로 했다.물론,우리학교에도 찌라시를 들고 가서 학생들,선생님들도 거의 대부분 불러 모아서 라이브 첫날은 그 휑뎅그렁하던 커피숖안이 그 가게가 생긴 이래고 가장 많은 사람들로 복작이게 되었다.
라이브뿐만 아니라,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메뉴판도 내가 손수 그리고 오리고 해서 새로 만들었다.
대충 이런 식의 메뉴를 두,세가지 정도 만들었다.한번에 여러가지를 먹을 수 있도록 하고 가격대를 조금 올리면 두명이 와서 하나만 시켜도 먹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학교만 끝나면 총알같이 커피숖으로 가서 노는 것도 아니고,일하는 것도 아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학교 아이들중에 아르바이트를 쉬는 친구들이 꼭 한둘씩 혹처럼 따라 와서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쯔꾸다상이랑 앉아서 동문서답의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를 얻어 마시곤 했다.
쯔꾸다상은 음악을 정말로 좋아해서 가게에다 씨디를 거의 50장 이상 갖다 두었는데,지금 생각나는건 하마다 쇼우고밖에 없다.하마다 쇼우고를 너무 좋아해서 매년 콘서트는 반드시 가고 새앨범이 나오면 꼭 산다고 했다.난 뭐가 그리 좋은지 잘 몰라서 매일 구박을 하며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틀게 했었다.근래 들어서 하마다 쇼우고를 다시 접하게 되었는데, 때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모호하기는 하지만,그래도 전혀 낯설지 않은 친밀감같은 걸 느끼게 된다.
아무튼,이 라이브건과 새메뉴건은 대성공을 거두었고,백화점을 찾는 손님들 뿐 아니라,백화점안에 부스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기분전환겸 자주 찾아 주어서 매상이 아주 많이 오르게 되었다.그런데,결국 이 커피숖은 3달 정도 일하다가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왜냐하면 바로 위에서 나중에 이야기 한다고 한 비디오 언니가 나를 너무도 애타게 찾았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피곤에 쩔은 얼굴로 당시 3살이었던 요시오의 손을 잡고 우리 가게에 나타났을 때가 생각난다.요시오의 꾀죄죄한 얼굴이랑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먹다 흘려서 꼬질꼬질해진 티셔츠가 떠오른다.언니가 간곡히 다시 함께 일을 하자고 해서 나는 하가상과 쯔꾸다상과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다.
쯔꾸다 상의 보라색 옥수수같은 이빨들 사이에 한개분이 뻥 뚫려서 너무나 어벙하게 보이던 얼굴이 떠오른다.내가 일본땅에서 만난(학교 선생님들 빼고) 제일 처음 친해진 일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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