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아이아빠도 벌써 한참전에 잠이 들었다.창문이 매서운 바람때문에 가끔씩 덜컹거린다.바람소리를 들어 보니 내일 날씨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누으면 바로 잠이 들 것 같은데 지금의 이 평화로운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혼자있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완전히 혼자일 수 있는 시간.그 시간이 너무 길면 지루하고 힘들어지지만 가끔 한번씩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있어 보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아직 밤낮을 못가리는 갓난아기 용대때문에 은실이가 깨어 있겠구나.다른 사람들은 다들 잠을 자고 있는걸까.쓸데없지만 괜시리 궁금해진다.
드디어 한국에도 사즈 환자가 발생했다고 한다.한국은 괜찮아야 할텐데 하고 걱정을 했더니 역시나 중국 바로 옆에 있어서인지 영향을 받은 것 같다.그래서 이제 곧 출산을 하기 위해 한국으로 나가야 하는 산모들이 걱정이 많다.사즈가 줄어들 낌새는 보이지 않고 중국에서는 하루에 100명씩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데 과연 언제가 되어야 잠잠해질까.
일본에는 아직 사즈 발병은 없었지만 뉴스마다 제일 첫머리에 사즈에 관한 뉴스들이 방송되고 있어서 다들 민감해져 있다.나리타 공항에는 사람의 체온을 조사할 수 있는 사모그래피 기계를 설치해서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체온이 조금 높은 사람은 여지없이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하고 있다.
지호도 아직 어리고 갓난아기도 그렇고,나는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일본에서 아기를 낳아도 상관은 없지만 제대로 몸조리를 할 수가 없으니 문제이다.그래도 일본에서 출산하게 되면 지호는 엄마랑 아빠랑 안떨어져도 되니까 좋을 것이다.갓난아기도 비행기를 타고 긴 여행을 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가 있을 것이고.
내일이면 5월에 접어든다.만약 일본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될 것 같으면 종합병원으로 병원을 옮겨야 하는 것이 문제이다.지금 다니는 병원은 분만할 수 있는 산과가 없다.일본은 갑자기 찾아와서 아이를 낳겠다고 하면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른다.아이낳기 전 두달은 그 병원을 다녀야지 조금 낙낙해진다.
한국 병원은 사실 여러가지로 편했다.한국말로 복도에 앉아서 수다를 떨어도 되고,좀 시장같은 분위기도 없지 않았지만 그게 다 같은 나라 사람이니까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하나.일본 병원은 대기실도 어찌나 조용한지,우리 지호가 밖에서 뽀시락만 대도 금방 표시가 난다.하긴,일본 여자들은 진통할 때 소리도 안지른단다.내 친구가 아기 낳으러 들어갔다가 옆 산모들이 소리를 하나도 안내고 진통을 해서 질려 버렸다고 한다.내눈으로 본게 아니니 잘 모르겠지만 그게 소리도 하나 안내고 참을 만큼의 아픔이 아닐텐데......
암튼,잘 생각하고 결정해야겠다.일본에서 낳던 한국에서 낳던 장단점이 있으니 어느 쪽이 더 나을지를 잘 판단해야겠다.한국에 가는거야 가는 거지만 나중에 아이를 낳고 나서도 사즈,사즈 하면 비행기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정말 문제가 되니까.
402 
1/21 
